성도의 자랑과 기쁨
성경말씀: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살전 2:19-2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인정받기를
원한다. 때로는 인정받기 위하여 자신을 과장하고 확대하기도 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같은 사람들은 모두
역사에 남는 철학자들이지만, 이들 역시 자기를 자랑하고픈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헤겔은 “나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전한다. 아니, 내가 곧 진리다.”라고 했으며, 피히테는 “나의 모든 철학은
바로 성령의 유출이다.”라고 망언을 했고, 쇼펜하우어는 “나는 어떠한 성인도 엄두를 내지 못한 새로운 인생의 막을 연 사람이다.”라고 큰소리쳤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를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남편
또는 아내를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자식을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부를 자랑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학문을,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권력을 자랑하지만 이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헛된 자랑들이다.
우리가 세상에 속한 것을 자랑할
것이 없다. 이는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이 세상 살 동안만 허락되어진 것이요, 잠시 잠깐 후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의 지혜와 능력과
문벌과 소유와 행위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고 구원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속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무익하고 씁쓸한 맛을 남긴다. 듣는 사람이 이것을 듣고 말하는 사람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랑은 시기 나게 하며, 배아프게 하며, 그 사람에 대한
험담을 하게 한다. 그러나, 주 안에서 주님을 자랑함은 유익을 주며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실현하게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에게
자랑꺼리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고 거룩한 자가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이 온전히 사함 받음을 자랑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주를 자랑하라”(고전 1:31)고 권면한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9장 23-24절에서 빌려온 것인데,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자랑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단어 카우카오마이(καυχάομαι)는 세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첫째는 ‘자랑하다’(boast)는 뜻이고, 둘째는 ‘기뻐하다’(rejoice)는 뜻이고, 셋째는 ‘영광돌리다’(glory)"는 뜻인데, 주님을 자랑할 때는
이 세 가지 뜻을 다 포함한다. 곧, “주 안에서 주님을 자랑하는 자”는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주님을 증거함으로 자랑하고, 자랑함으로 그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넘치고, 이로 인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그 위에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한 가지 더 자랑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전도의 열매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그들의 믿음이 바울과 그 일행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하고 있다. 우리의 자랑이 주님 안에서 항상 주님을 자랑하고, 바울이 데살로니가교인들을 자랑과 기쁨으로
여겼듯이 우리의 전도의 열매들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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