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성경말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체우기를 원하노라”(골 1:24)
유대인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은 그의 자전적 작품, 「밤 (Night)」에서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다른 유대인들이 나치(Nazi) 강제수용소들에서 당한 고난을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고난 가운데
잠잠하신 하나님께로 향한 원망과 하나님의 실존에 관한 회의를 소년(=자신)의 눈과 마음을 통하여 기록하고 있다. 엘리 위젤이 부나(Buna)에 있는 수용소에
머물고 있을 때, 그는 3명의 유대인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두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소년이었는데, 두 명의 어른은 교수형에 처해질
때,
“자유 만세!”를 외치는데 죽음 앞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년은 그저 잠잠할 따름이다. 30분 이상이나 교수대 위 밧줄에 대롱대롱 매어 달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바둥대며 서서히 죽어 가는 소년을
보면서 소년 엘리 위젤은 마음 속으로부터 울부짖는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 계시길래 유대인의 고통 가운데 잠잠하십니까?’ ‘엘리 위젤의 하나님’은 바로 이 순간에 소년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시고 그의 죽음의 고통을 맛보고 계셨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유유자적하시면서 그의 자녀들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의 자녀가 고통을 당할 때 함께 고통스러워하시며,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시며,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신다.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 영광의 보좌에 계시지만, 성도의 고통과 눈물 가운데 잠잠하신
분이 아니시라, 지금도 우리의 고난을 함께 담당하고 계신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what is
lacking in Christ's afflictions, RSV; the remainder of Christ's
suffering, LB)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느 신실한 어머니에게 말썽꾸러기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 아들이 이제라도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바른 신앙의 삶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암에 걸려 죽게 된다. 병으로 인한 고통이 그에게 참으로 컸지만, 어머니의 더욱 더 큰 고통은 아들의
방황과 불신앙이다. 어머니의 암으로 인한 고통은 육체가 죽을 때 끝날 것이지만, 아들로 인한 고통과 안타까움은 그가 하늘나라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 될 것 같았다. 아들이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 될 때에야 비로소 중단될 고통이다.
사람들을 위한 고통을 다 담당하시고 죽으셨기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시고(빌 2:9; 엡 1;20)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9; 엡 1:21)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시고(골 1:18),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시고(엡 1:22; 빌 2:10)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다(골 1:18; 엡 1:22).
이제 그리스도께서 낙원에서 평안히 쉬고 계시면 그만일 것 같은데, 그리스도의 고난은 십자가 상에서 끝나지 아니하시고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사울이었던 바울이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기 위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전 9:4, 22:7,
26:14).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사실 동안에 바울이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고 해서 그를 괴롭게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렇게 말씀하심은 그가
교회의 머리되시기에 그의 몸인 교회의 고난이 그의 고난이요, 지체들인 성도들의 고난이 여전히 그에게 고난이 됨이다.
바울은 지체인 성도들의 잘못됨과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여 그리스도가 여전히 당하시는 그의 “남은
고난”을 감당하기를 원하며, 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그의 바른
복음증거와 그에 따른 교회와 성도들의 바로 섬을 통하여서 줄어들고 결국에는 없어지기를 원하는 바람이었다.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감당하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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