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실체
성경말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로새 2:16-17)
신앙생활을 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어려운 것은 성경말씀의 해석과 적용이다. 바울은 ‘율법의
저주아래 있지 말라’(갈 3:10-13 참고)고 함으로써 이방인은 율법 책이
필요 없는 듯 말씀하는데, 크리스천들에게 여전히 구약성경이 있다. 그리고 또한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은 율법 또는 말씀의 일점일획도 가감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마태 5:18; 마가 13:31; 누가 16:17 참고).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은 “믿음”만(?)을 강조한 것 같은데,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대표주자인 야고보는 (믿음의 결과 증거로서의)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을 따라야 할 것인가? 우리가 유대인이 아니요 이방인 크리스천인 면에서는 바울 사도의 서신들만 따르면 좋을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
미국 등 모든 이방나라의 교회들 중에 신약성경-그 중에서도 바울서신들만 갖고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교회들이 없다.
그러면, 바울은 구약과 율법을 버려도 좋다고 설교하고 있는가? 아니다. 바울은 율법에 관하여 말씀하되, 로마서 7장 12절에서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했고, 7장 14절에서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라고 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율법의 저주아래 놓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왜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율법을 따라 사는 삶이 죽기보다도 싫은 고통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 같아서 아무 의미 없이 율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는 율법이 저주요 멍에일 뿐 그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율법에서 자유한 것은 좋은데 방종에까지 이른다면 이는 문제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기에 나의 삶은 아무래도 좋다’고 여긴다면, 이 사람 역시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오해한 사람이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에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다.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총 66권의 모음을 정경이라고 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에 관한 기록이 이 66권이 전부가 아니고 수 백 권의
많은 책들 가운데 신뢰할만하고 일관성이 있는 것들이 정경 66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경을 영어로는 캐논(Canon)이라고 하는데, 이는 (판단의) 기준 또는 규범이라는 뜻이다. 성경이 크리스천 삶의 기준 또는 규범이 되는데, 이 기준은 신약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된 구약의 말씀도 그 기준을 제공한다.
성도들은 율법의 규례를 따라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과 안식일에 의해 구속(拘束)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로는 이방 크리스천들에게 그리 중요한 의미가 없다. 그러나, 실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되어진 율례와 절기, 사건들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재해석되어진) 이들이 성도들의 삶에 새로운 기준(canon)과 규범이 되기 때문이다.
신약 성도들은 구약을 읽어야 하는가? 물론
읽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뜻과 원함을 더욱 잘 깨달아 알기 위하여 구약을 읽어야
할 것이며, 구약의 그림자가 실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우리 삶에 적용되는지 알기
위하여 구약을 읽어야 하며,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실패와 성공, 하나님의 징계와 축복을 통하여 우리 삶을 주장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구약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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