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30, 2019

나의 약함을 통한 하나님의 강하심


나의 약함을 통한 하나님의 강하심

성경말씀: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10)

노자는 낮추기(또는 겸손)를 잘하는 것의 대표로서 물을 들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66에 있는 말이다:



   강과 바다가 능히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스스로 낮추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以其善下之)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이다. (故能爲百谷王)

   백성 위에 있고자 하면 (是以欲上民)

   말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고 (必以言下之)

   백성 앞에 서고자 하면 (欲先民)

   스스로 몸을 뒤에 두어야 한다. (必以身後之)

   그러므로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이 그 무거움을 못 느끼고 (是以聖人處上以民不重)

   앞에 있어도 백성이 그를 해롭게 여기지 않는다. (處前以民不害)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즐거이 받들고 싫어하지 않는다. (是以天下樂推而不厭)

   다투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다투지 못한다.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물은 높은 곳에 두더라도 높은 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물의 이 속성은 짐짓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변할 수 없는 속성이다. 또한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의 모양이 없다. 네모난 용기에 담으면 네모난 모양으로 있고, 둥근 용기에 담으면 둥근 모양으로 있고, 울퉁불퉁한 용기에 담으면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있다. 그러나, 그 물이 산을 깎아 내리며 바위처럼 단단한 것을 부수는 힘이 있다.
물과 관련한 노자의 가르침은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주로 해당하는 것이지만 세상에서 원만한 처세를 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겸손(謙遜)을 강조하는 성경의 가르치심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성도에게 물과 같이 아래로 처하고자 하는 겸손과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부드러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힘을 발하여야 할 때, 물과 같이 거칠 것이 없는 기세도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12(또한 누가복음 1411)에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리라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10절에서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 말씀한다. 자기의 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이 역사하신다. 우리에게 물과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춤이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약함을 고백하는 고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할 때,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고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세상사람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겸손의 의미와 교만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하나님 앞에 겸손이 좋다는 것은 많이 들어서 아는데 겸손해야 할 때 겸손하지 못하고, 담대해야 할 때 그렇게 함은 교만이라 여기고 겸손한 척 한다는 것이다. 겉모양으로는 겸손이 있는데 속으로는 상대방보다 또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자신을 낫다고 여김은 겸손이 아니다. 다만 교만을 겸손으로 포장한 것일 뿐이다.
성경적인 겸손은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만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의존하는 대신에 자신의 능력과 세상 지혜에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약함과 낮아짐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높아짐이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에 나타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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