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중국 선교여행 일기 20
6월 28일 (화요일)
아침 7시 40분에 체크아웃(check-out)하니 어제 예치했던 100불을 돌려준다. (어제 만난 사람말고 다른) 여행사 직원이 8시까지 오기로 했는데 15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2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베이징 시내는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차가 꽤나 많이 다닌다. 천안문 광장에
내렸다. 민주화 물결이
일던 장소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다. 천안문 광장 건너편에 커다란 모택동의 사진이 걸려 있다. 중국은 여전히
모택동의 영향이 지대한 나라이다.
북경의 시가를 이곳 저곳 구경하고
북경대학교로 향했다. 중국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는 사람들의 평균 월수입이 300원(37-38불)인데, 북경대학교나
칭화대학교 졸업생들은 평균 1000원(125불)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여 준다는 얘기다. 북경대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칭화대학교가
있어서 칭화대학교도 보기로 하였다. 북경대학교가 고풍스런 건물들과 캠퍼스 분위기를 갖고 있는 반면에 칭화대학교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학들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캠퍼스가 작은 느낌이다.
두 대학교를 둘러 본 다음에는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만리장성 입구에
한국인 식당이 있어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음식값은 연변의 세 배 정도 되었다. 만리장성은 잘 아는 바대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완성한 성벽이다. 만리장성의 꼭대기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중국관광의 가장 중요한 명소답게 사람들이 많았다. 그 옛날에 어떻게
산들 위에 이런 길고 거대한 성벽을 쌓을 생각을 하였는지? 이 성벽을 쌓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성벽들이 산들을
지나 끝없이 계속 이어져 있다.
저녁 8시 비행기로
북경을 출발하여 밤 10시 25분에 연길에 도착 짐을 찾고 나오니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사람(박상일 국제교류처
처장)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연변과기대의
간호대학의 일로 그곳을 자주 오가시는 이송희 회장님이 수 차례 전화하셔서 나의 숙소와 머무는 일정에 차질이 없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단다.
학교숙소에 이르렀는데 마침 정전이
되어 캄캄했다. 촛불을 찾아들고
기숙사 지하 1층에 마련된
숙소로 갔다. 안은 침대 2개가 있고 비닐
장판이 깔린 깨끗한 방이었다. 텔레비전과 냉장고까지 갖춘 방이다.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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