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중국 선교여행 일기 11
6월 19일 (주일)
아침 6시에 기상하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다. 오늘 두 차례 있을 예배를 위한 본문말씀과 설교할 것을 묵상했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10시에 교회로
향했다. 쌍뜨 빼쩨르부르그
장로교회는 자체성전을 보유하고 있고 두 차례 예배를 드리는데, 1부는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을 위한 러시아어 예배이고, 2부는 유학생들, 주재원들과 한국에서
교육 차 파견된 군인들(주로 해군들)을 위한 한국어 예배이다.
한국 선교사들에 의한 러시아 선교 초창기에는 한국인 목사님들이 서투른 러시아어로 설교하더라도 불평
없이 경청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얘기했는데, 요즘 러시아 교인들 가운데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해서, 95% 이상의 교회에서
한국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고려인들을 통역으로 세워 예배를 드린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요 은혜라고 본다.
‘카레이스키’라고 불리는 고려인들의 기원은 조선조 말기인 1864년에 극심한
가난을 피하여 구 러시아의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韓人) 13가구이다. 중국의 동포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구 소련지역의 한인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처음에 블라디보스톡 등 연해주에 몰려
살았는데, 스탈린(Joseph V. Stalin, 1879-1953)이 정권을 잡고 있던 1937년 9월, 러시아 극동지방의 한인들이 일본과 내통하고 일본을 지지할 것이라는 이유로 강제 이주를 결정한 지 단
두 달만에 18만여 명을 기차에
태워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 중간 중간에 내려놓았다고 한다. 강제 이주된 중앙아시아에서 천신만고 끝에 자리를 잡았는가 했는데 이 지역에 새로 현지 민족에 의한
이슬람공화국들이 들어서면서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을 강요당하는 바람에 다시 고통을 겪고 있다. 해서, 그들은 구(舊) 소련연방이 무너져
내린 다음에 다시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들 중 상당히 많은 수가 연해주를 비롯한 러시아의 여러 도시들로 옮겨와 살고자 하지만 러시아 당국이
그들에게 쉽사리 시민권을 주지 않고 있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에 20만 명, 카자흐스탄에
10만여 명, 키르키즈스탄에
2만 명, 타지키스탄에
1만 5천 명 정도가
살고 있고, 우크라이나에
1만여 명, 그리고 연해주를
비롯한 러시아에 11만여 명 등 45-50만 명 가량이 구소련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고려인들의 구소련에서의
삶은 참으로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복음의 도구로 또한 한인선교사들과 러시아인들 또는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공화국인들을
연결하는 다리로 축복하고 계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