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성경구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살전 1:1).
바울은 그의 데살로니가후서의
시작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서술할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라고 했다. 교회와 일반 사회모임의 결정적인 차이는 교회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임이고, 일반 사회모임은 “밖에
있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되어져야 한다. 모임의 시작도 기도로
시작하고 끝도 기도로 끝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인도하심대로 따르겠다는 작정의 표시이다. 따라서 교회의 모임을
세상 모임처럼 여기는 마음이나 행동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교회’라는 말--에클레시아--이 또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또는 구분을 의미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구약시대, 또한 예수님과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서너 곳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시편 68편 5절에서 “그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했고, 시편 89편 26절에서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고했다.
이사야 9장 6절에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상의 삶 가운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가르쳐 주신 분은 예수님이신데, 바울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그의 모든 서신에서 인정하고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계셔서 우리의 모든 사정에 귀 기울이시며 응답주시는 ‘우리의 아빠’와도 같은 친근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녀로 여기신다고 했다. 갈라디아서 4장 6-7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말씀한다. 또 로마서 8장 14-15절에서 바울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며 우리 교회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계신 분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란바울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연합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지며 평안과 기쁨이 있다. “그리스도 안”은 영적 축복의 근원이요 영역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교회와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라고 칭하여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오직 우리들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는 것들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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