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하는 믿음
성경말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
1:3)
야고보는 그의 서신 2장 26절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한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라고 하면서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고 하는 사람은 역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다.
야고보는 2장 14-17절에서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한다. 기도와 성경공부는
잘 하는데, 주위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있는데도 그들을 모른 체 한다면 이 사람은 역사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믿음이 참 믿음
되기 위하여서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동반해야 한다.
중국인으로서 세계적인 교회지도자요 선교전략가인 토마스 왕(Thomas Wang)이란 사람이 있다. 그가 젊었을 때에
그의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설득한 결과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기로 승락하긴 하였지만 그 마음에는 별로 내킴이 없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북경에
있는 어느 선교사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선교사 부부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분들이 믿는 예수님이라면 한 번 믿어봐야 되겠다’고 다짐하고 비로소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주위사람들을 의식하여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부담스러운데 그러한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다. 은혜법칙 하에 있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로 이러한 삶을 사모하게 하며 성령이 우리를 도우실 때 이러한 삶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과 구원의 보장을 받는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남은 참으로 귀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여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어린아이는 하나님 안에서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칭의(稱義,
justification)라고 하면,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한다.
칭의는 ‘고백하는 믿음’으로 얻어지지만, 성화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 또한 5:13-14; 야고보는 이를 행하는
믿음이라고 함)으로 가능하다.
‘고백하는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이듯이, ‘역사하는 믿음’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고백하는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모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듯이, ‘역사하는 믿음’ 역시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지 않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고백하는 믿음’이 인간 행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역사하는 믿음’ 또한 행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며 주장하시기를 원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성령을 원함도 연약한 인간의 바람이기는 마찬가진데,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를 시작하실 때 성령은 우리의 원함을 하나님의 원하심과 일치되게 하시며
육체의 원함으로부터는 멀어지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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